PD수첩에서는 켈로부대원이셨던 장근주 할아버지에 관한 사연을 소개했었습니다.
켈로부대(KLO부대)..
저로서는 솔직히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여성이다보니, 군에 관한 상식이 아주 부족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켈로부대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에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대중, 대북 첩보조직이었던 켈로부대는, 소속이 불분명(켈로부대는 엄밀히 말하면 미군에서 조직한 부대이지만 이후 미국은 나몰라라 하고 있고, 한국 측은 한국군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에 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지만,켈로부대가 크게보면 UN군 소속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들을 이렇게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은 참으로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하여 아직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인정(국가유공자 등의 인정)도, 정당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전 즈음(1949년이라는 숫자가 어디서 나오긴 했는데, 정확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저로선 잘 모르겠네요...)부터 625가 끝날 때까지, 분명히 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던 군인들인데, 소속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여기서도 저기서도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하니, 솔직히 말도 안되는 일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제, 방송 내용으로 돌아가 장근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한국전 당시 한국군으로 입대했던 장근주 님은 켈로부대 호염부대로 배정받아, 임무를 받고 중국에서 활동(주임무는 첩보활동)을 하시던 중 중국 측에 체포되어, 15년 형을 선고 받고(중국에 붙잡힌 5명 중 10대였던 2명은 사형을 면했지만, 20대 이상이던 나머지 3명은 사형을 선고 받았더군요. 그러니, 할아버지는 10대에 군대에 가서, 대 중국 첩보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남의 나라에서 감옥살이를 하신 겁니다) 14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풀려나셨다고 합니다.
이후, 장근주 님은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했지만, 냉전시절이었던 그 시절에 수교도 맺어지지 않은 남한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할 수 없이 장근주님은 감옥으로 다시 돌아가 숙식을 해결하며 목공 일을 하다가 현재의 조선족 부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장근주 님의 소원은 한국에 다시 돌아와 보는 것이었고, 이후 길을 찾던 중 남한에 남아있는 가족과 연락이 닿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식이 끊어졌고(남동생분이 계시던데, 이분은 또 얼마나 속이 탔을까요?), 우리 정부측에서는 장근주 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고국으로 모셔오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신장암 말기 선고를 받은지 이미 5년, 이제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던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은 대한민국에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 측에서는 할아버지께 보통의 사람들이 밟는 수속을 요구했고(할아버지는 한국인이니 한국국적을 가져야 한다며, 중국 국적을 거부하셨고 50여년 이상을 계속해서 무국적자로 살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주중 한국대사관 앞을 지키고 있는 중국 공안이 무서워(힘든 감옥살이로 할아버지는 공안만 보면 두려워하셨답니다) 차마 대사관에 들어가 한국으로의 입국과 관련된 수속을 밟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해서, 지금 할아버지 측은 대한민국 정부에 이같은 사실을 알리며, 할아버지께서 한국에 방문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전했지만, 정부 측에서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을 하고 있는 상황이구요.
방송을 통해 장근주님의 피디수첩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제 개인적으로 느낀 것이라면, 대한민국 정부는 할아버지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단지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데도(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타국에 그렇게 할아버지를 방치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방송 중에 인터뷰하신 어느 분 말씀처럼, 미군의 유골까지 찾아가는 미국에 비해서, 살아계신데 조국행을 돕지 않는 한국정부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자신을 버린 조국을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자 뉴스에 방송에 출연하셨던 장근주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http://photo.media.daum.net/photogallery/politics/0803_politics/view.html?photoid=2898&newsid=20080630112717758&cp=yonhap
결국, 다시 돌아와 한국 땅을 밟아보고 싶어하셨던, 동생과의 만남을 기대하셨던, 할아버지의 생전의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유언으로 유골이나마 한국 땅에 묻히기를 희망하셨습니다.
누구를 위한 정부입니까?
국가를 위해 평생을 바친 분입니다.
그 개인의 인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말로도, 어떤 보상으로도 그분의 노고와 희생에 대한 댓가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에라도, 그 영혼이나마, 조국에 돌아와 편히 쉬실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정부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을 들어주셔야만 할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ㅜㅜ
'이슈에 한줄보태기 > 사건사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연예인 의상의 선정성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4) | 2008/09/20 |
|---|---|
| 故 안재환 씨의 명복을 빕니다. (8) | 2008/09/11 |
| 이언의 사망 소식, 믿기지가 않네요. (6) | 2008/08/21 |
| 다음 메일, 오류 발생.. (24) | 2008/07/22 |
| 금강산 관광객,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하다. (4) | 2008/07/12 |
| 켈로부대원 장근주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ㅜㅜ (4) | 2008/06/30 |
| 안먹으면 그만?? (4) | 2008/06/12 |
| 올림픽 성화보다도 못한, 사람의 안전.. (8) | 2008/04/28 |
| 옥션 개인정보 유출사건 (6) | 2008/04/18 |
| 거짓말처럼 하늘로 날아간 터틀맨.. (5) | 2008/04/03 |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옛 법으로 돌아가야... (4) | 2008/03/20 |
|
|






이곳에 댓글을 남겨 주세요~~~^^
군인희생자들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태도차이...
...그게 사실 양국의 나라사랑과 자부심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죠.
공익인 제가 이야기하면 굉장히 꼴이 우스워집니다만...
우리나라에서 국가에 몸 바쳐 충성을 해도 남는건,
뒤떨어진 공부와 잃어버린 2년밖에 없습니다.
...예전의 그 알량한 가산점조차 없어졌으니 --);;;
외국생활 하면서 한국 영사관들이 자국민 챙기는걸 보고 있으면
문득 태국인 유학생인 친구가 매우매우 부러워지더라구요...(...)
그럼에도 장근주님은 끝까지 한국에 돌아가 보고 싶다고, 취재팀에게 잊지않고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짝사랑도 이정도면....ㅜㅜ
요시토시님도 주어진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계신건데요..
우스울 것 전혀 없습니다.(힘내세요~^^)
개인으로 보자면, 20대, 바쁘고 바쁜 나이인데, 근 2년을 묶여있자면 여러 생각들이 드는 게 어찌보면 당연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평시도 아닌 휴전상태인데다가, 나라에 돈이없어 모병제도 못하는 걸요.
영사관은 유명무실..
여러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전부터 쭉 느꼈던 생각이 그겁니다.
그냥, 알아서 본인이 해결하는 편이 더 빠를 듯 싶어요.
결국, 대한민국은 코스타리카보다도 못하고, 태국보다도 못하나 보네요.
여러 면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몇위의 국가일까요? ㅜㅜ
명복을 빕니다. 마음이 아프네요
ㅜㅜ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